분양상담사_고진감래의 추억(feat.1외8피)

 

2015년 어느 날 갑자기 대표 호출이 왔다.수원에는 1동 규모의 수익형 매물이 있지만 현재는 50% 정도밖에 분양할 수 없어 그 사이 대리점이 세 번이나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나는 듣자마자 속으로 생각했다.그럼 내가 네 번째? 오 마이 갓! 휴우~ 대표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부인할 수 없다는 듯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핵심은 대표와 개인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비즈니스적으로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중요한 시행사이기 때문에 골치 아픈 현장이지만 어떻게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기존 대행사가 백기를 들고 나간 현장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백지수표 한 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믿어라는 압박 백배의 말을 던졌다.나는 일을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왠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다음 날부터 동수원 인계동 C건설회사 분양현장으로 출근했다.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현장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외관은 예쁘게 보이고 위치도 수원 번화가의 큰길이라 나쁘지 않았다.건물 옆 라인에는 라마다 호텔이 있었고 은행도 있었다.

다만 건물 전면 뷰가 고가도로에 막혀 있었다.당시 내가 분양해야 할 가구는 남은 100가구.

평소 물량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았지만 3개 대행사가 포기한 전력을 감안하면 쉽지 않아 보여 답답한 풍경만큼 내 마음도 답답해졌다.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문제점이 드러났다.분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마감재 곳곳이 훼손돼 AS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환기 관리를 하지 않은 세대 속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초기 분양 시점조차 놓친 총체적 난관 그 자체였다.

원래 분양은 팜플렛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여 주고 파는 것이 오히려 쉽고 실물을 보여주면 계약 체결이 어렵다.게다가 이렇게 눈에 띄는 흠이 많으면 누구나 지갑을 열지 않을 게 뻔했다.한숨이 나왔지만 나의 유일한 장점인 긍정적인 마인드를 열심히 가동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여기서 더 내려갈 바닥이 어디 있겠나.’편하게 하자, 편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초조했다.사실 나는 매번 분양현장이 시작될 때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다.모든 신경세포가 현장에 집중되기 때문이다.약 2주간은 아침 일찍 나와 늦게까지 분양사무소의 인테리어를 재정비했다.

벽면에 분양 관련 자료를 붙인 고급 시트지로 벽지를 발랐고, 개발계획 자료와 건물 평면도, 수익형 상품 셀링 문구로 멋지게 벽면을 인테리어했다.

오피스용품까지 갖추고 보니 손님 맞을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다음으로 광고 준비를 했다.예산에 맞춰 전단, 외부 홍보에 사용할 판촉물, 고객들에게 보여 줄 팜플렛 등을 제작했다.

타깃 지역 내 현수막을 내걸고 전단을 붙이고 외부 홍보하는 단지를 섭외한 뒤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틈틈이 교육자료를 만들고 분양상담사들을 모집했다.어려운 현장으로 알려져서인지 분양상담사 모집이 쉽지 않았지만,

기존 인맥을 활용해 15명 안팎의 소규모 분양 상담사를 뽑았다.준비 과정에만도 모두 한 달이 걸렸다.본 게임 시작됐다.분양상담사들과 의기투합해 각종 홍보도 하고 인근 부동산을 돌며 열심히 홍보했지만 제대로 된 콜이 나오지 않았다.조용한 날의 연속이었다.

가뭄으로 대규모 손님이 왔지만, 계약에는 이르지 못했다.결국 분양상담사는 버티지 못했다.기본급도 없고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자 하나 둘 출근하지 않고 3명만 남았다.위기였다 대표님께 상황 보고를 드렸다

두 달 전 내게 백지수표 1장의 운영비를 주겠다던 사장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신중하게 생각해 달라고 했다.

계속 분양을 하든지 손해를 보든지 현장을 접는 게 좋은지 총괄본부장이 잘 판단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내심 섭섭했지만 사장으로서 할 말을 했을 뿐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밤낮으로 고민이야.지금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고민 끝에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걷어내고 최소한의 운영 경비로 홍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가장 중요한 분양조건을 대폭 수정했다.이것이 회사의 위험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관철시켰다.

끈질긴 요구에 몇 개만이라도 팔아 달라는 조건부 수락을 받아냈다.「대표는 현장에 대한 기분을 거의 비운 것 같다.아무튼 그렇게 새롭게 변했다.지금까지는 분양가의 10%인 약 1천만원의 계약금을 내고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자가 자신의 물건을 부동산에 팔고 세입자를 맞혀 잔금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새로 바뀐 분양 조건은 파격적이었다.임차인의 2년 치 월세를 계약할 때 미리 선불하는 식이었다.

임대수익 선불은 분명히 차별화된 혜택이었다.

초기 계약자가 1억원이 조금 넘는 소형 아파트를 사는 데 300만원이 채 못 되었다.

계약금까지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어 고객은 계약 시 바로 돈을 쓰지 않았다.신분증만 있으면 돼.새로 바뀐 분양 조건을 알려주기 위해 며칠씩 밤을 새워 전단에 들어갈 문구를 고민하며 홍보 기사를 준비했다.홍보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광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1만원권과 백화점상품권을 많이 샀다.계약 여부와 상관없이 주변 부동산이 고객을 데려오면 무조건 백화점 상품권 3만원을 줬다.부동산을 가지든, 고객에게 주든 반으로 나누든 상관없었다.다섯 번 넘게 고객과 함께 찾은 한 부동산은 상품권 받기 민망하다며 쑥스러워했지만 그래도 건넸다.

다시 홍보를 시작한 뒤에는 조금 긴장했다.뭔가 이번에는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2주 정도 됐을까?부동산 사이에 소문이 났다.실제로 계약하는 손님이 한두 명씩 방문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상담을 받으려면 줄을 서야 했다.방문자의 모든 상담을 내가 직접 했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분위기를 띄워 계약 승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몇몇 분양상담사는 내부적으로 집을 보여주거나 브리핑 때 차량을 서비스하거나 부동산 홍보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대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50대의 아내와 대기업에서 퇴직하자마자 남편인 보수적인 부부가 분양 사무소를 찾았다.

지나가다가 현수막을 보고 들어갔다고 말했다.대출에 부담을 느끼지만 부동산 제테크를 희망하는 엘리트 부부였다.

배우자 퇴직금과 그동안 모은 여유자금을 합쳐 약 2억6천만원 정도의 돈으로 월세를 받을 매물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부부는 그날 한 채에 1억 초반짜리 소형 아파트 2채를 분양받았다.이후 정식 계약서류를 준비하여 다시 분양사무소에 오면 2채를 추가로 분양받고,

이에 앞서 계약한 주택의 미비한 계약서류를 보완하기 위해 분양사무소를 재방문할 때마다 대출을 받는다는 데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조금씩 깨졌다.

돈을 벌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의 착한 대출도 있다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겨났다.대출 없이 2채를 샀을 때보다 대출을 잘만 활용하면 월세 수익이 수직 상승할 수 있다는 수익률표에 부부는 잠에서 깼다.후에 총 8채의 집을 구입하였다.그렇게 한 달여 만에 30여 건의 계약을 체결하고 점차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부동산업자는 아예 방문 예약을 잡아왔다.

부동산 소개수수료는 정계약이 끝나면 일주일 안에 지급해 신뢰를 쌓았다.계약 체결 후 마지막 감사 문자메시지까지 보내면 자신의 일이 겨우 끝났다.

그렇게 5개월여 고군분투해 성공적으로 현장을 마무리했다.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를 몸과 마음으로 맛보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힘겨운 미분양 현장에 들어서면 늘 이 시절이 생각난다.나로서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다시 한번 권하는 일종의 좌표 같은 에피소드이다.